포용의 정치를 위하여

포용의 정치를 위하여



2017.10.28



▣ 포용의 정치를 가능케 하는 것


정치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오직 찬반이 있을 뿐이다. 정치를 옳고 그름의 성역으로 바라본다면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없애야 하는 갈등과 배제만 불러올 것이다. 언제나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놓은 제도 속에서 작동하는 ‘정치’라는 행위는 분명한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편하게 모두 함께 잘 살기’위해 만들어진 통치구조이다. 다만 ‘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권력구조가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개헌에 대한 요구가 높다. 그런데 국민의 70% 정도는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학자와 정치인들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등 찬반이 갈리는데 여론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이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민들은 이승만 정권에서 보여준 부정적인 부분 때문에 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여전히 대통령제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에서 대통령제는 박정희로부터 이어지는 유신독재, 군사정부가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 물론 단지 이것을 대통령제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 정부에서 중공업 우선 경제정책을 펴면서 권력과 기업이 결탁한 ‘재벌’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최순실 사태를 만든 것도 바로 이것이다. 재벌이 권력에 로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 권력이 재벌에 로비를 요구하는 구조에서 문제가 비롯된 것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제의 폐해는 이번 최순실 사태를 가져왔다. 우리는 지금 최순실과 박근혜를 비롯한 불법을 자행한 여럿에게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불의의 원인을 사람에게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도 괜찮게 넘어갔던 지난한 제도의 문제를 우리는 파헤쳐야 한다. 제도로서 이러한 일들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갈대 같은 존재다. 좋은 사람이 나와서 좋은 정치를 해줄 것이라 기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한국정치 제도에서라면 선한 사람이었어도 권력의 사슬에 들어가면 끝까지 선할 거라고 기대만 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 국민들에게 촛불을 들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갈등과 반목만 넘쳐난다. 한 집진영이 집권하면 상대 진영을 짓누르기를 주고받는 정치는 대통령제, 승자독식 집권구조의 문제이다. 포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치는 건강하지 못하다.


포용의 정치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화와 타협이다.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작동하고 권력분점으로 연결되는 그런 대화와 타협 말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공정하게 개선해야 한다.


▣ 대표성이 보장돼야 민주주의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 등 흔히 우리가 부러워하는 정치선진국들은 모두 다당제 국가이다. 6개정당, 9개 정당, 13개 정당 등 의석을 고루 갖고 있다. 한국처럼 양당이 아닌 다당제가 작동하며 정부구성도 연정을 통해 구성된다. 바로 선거제도의 차이다. 한국은 현재 양당이 독식하는 구조다. “못해봤자 2등인데 뭐”하는 고착화된 양대 정당은 국민들의 의사를 하나도 반영하지 못한다. 현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서로 “국민 모두를 대표”한다고 말한다. 모두를 대표하겠다는 말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선거가 끝나면 집권당은 서로를 배제한다. 대화와 타협은 전혀 없다. 다당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한국의 소선거구제 선거제도는 실제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득표율과 의석률은 전혀 동일하지 못하다. 영남에서 20%지지받은 민주당은 겨우 1개 의석을 가져가고, 호남에서 20% 지지받은 보수당도 1개 의석을 겨우 가져갈 수밖에 없는 병적인 구조다. 이는 지역주의와 더불어 고질적인 병을 만들었다. 대표성이 전혀 없다. 전체 득표율 13%를 넘겼던 정의당은 정작 의설률은 반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한다. 적어도 득표율에 비례하게 의설률을 배분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적인 제도이다. 그래야 대화와 타협, 포용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집권 1당이 전부 가져가는 구조에서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배제만 있을 뿐이다. 선거제도를 바꾸면 정당이 난무 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몰상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스웨덴도 10개 가까이 정당이 의석을 각각 나눠 갖고 있다. 그렇다고 스웨덴을 우리는 민주국가가 아니라고 말 못하지 않는가. 


다당제만이 정책경쟁을 가져온다. 현재처럼 양당구조는 정책경쟁이 아니라 인물경쟁과 선거일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병을 고쳐야 한다. 국민이 비판하는 국회의원 특권도 다당제로서 정책경쟁이 가능해지면 사라질 것이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특권도 다당제이면 서로들 국민의 눈에 맞추려고 정책경쟁으로 노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갈등과 반목, 배제를 멈추자. 우리는 포용이 필요하다. 한쪽에서는 적폐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국감장을 박차고 나간다. 어디에도 대화는 없다. 정치는 선과 악이 아니다. 서로를 배제하는 정치는 민주주의도 아니다. 국민들은 배제하는 정치에 이제 질렸다. 타협하는 정치를 원한다. 한국정치도 이제 타협이 가능한 포용의 정치가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선이 우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권력구조도 권력 분산하는 의원내각제 형식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민들이 여전히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가 있지만 이는 지난 역사에서 비롯된 부정적 편견 때문이니 정치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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