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지금여기에서

공동체, 지금여기에서


-온생명과 환경공동체적  (장회익) 읽고-


현재 사회의 가장  문제점중 하나는 바로 인간소외 현상이다전자본주의에서 근대화를 거쳐 현대화 과정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의 인간의 육체적 노동 대신에 기계화가 대체되면서 인간의 노동은 보다 가치적 상품수단으로 전락했다우리 자신들의 몸에 스스로 가격표를 매기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고 있다과학과 기계의 발전은 인류문명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동시에 인간의 삶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바로 우리 자신의 설자리를 기계화와 자동화에 내어줌으로 인해 우리는 기존과는 다른 생존전략을 찾아야 했다. 


인류는 씨족 혹은 부족사회에서 부터 공동체적 삶을 유지해왔다기존의 우리 인간은 노동력으로서 수확의 댓가를 직접 육체적 노동으로 지불했다그리고 공동체로서 부족단위씨족단위마을 단위로 형성되어 왔다이렇게 소속되어진 삶으로서 근대화를 거쳐 현대에까지 형성되어 왔다그러나 현대에 들어선 우리의 삶은 기존이 공동체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모든 인간은 어떠한 사회나 공동체에 소속될때에만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있겠다물론 무인도 같은 곳에서 혼자 삶을 꾸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인간이 사회에서 태어남과 교육되어지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필이 사회적소속적 특성이 있을  밖에 없다. 


지금 여기에서현대사회에서 공동체적 삶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분명 공동체적 소속감적 삶이 많은 부분 결여되었기 때문이다인간은 외로움을 타는 존재이다 인간이 아무도 없는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마 가장 슬픈   것이다소통이 없는 말을 들어줄 이도받아줄 이도 없는 공간을 상상해보면 우리는 쉽게 머릿속에 떠올려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대가족 사회였다 집울타리 안에 할아버지 할머니부모님또한 친척들도 같이 사는 대가족 사회였다최소한 현대사회에 접어들기  까지만 해도 대가족 사회였다그러나 지금은 소위 ‘핵가족이라 불리는 최소단위의 가족(공동체) 이루고 산다심지어 이러한 핵가족 보다  나아가 소위 ‘자유분방’ 혹은 ‘자유로움 추구하는 싱글(single)들의 늘어나고 있다여하튼 이러한 ‘핵가족 필히 현대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생산-노동의 발전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문제는 이러한 우리사회의 최소단위의 공동체가 줄어들고 ‘홀로서기 따른 경향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  ‘소외감’, ‘박탈감’ 등의 문제가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관계형성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한발  나아가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우울증을 비롯한 심적 병을 유발하고 심지어는 자살로 까지 이끄는 상당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물론  다른 다양한 원인제공이 있겠지만 크게 대두 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나는 아파트에 몇년을 살면서 옆집에 아직 누구 사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얼굴도  적이 없다과거에는 상상도   없었던 상황이 현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심지어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한  하는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볼수 있다이것이  부정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우나 공동체적 삶의 영역에서 바라볼때는 상당한 인간관계 혹은 사회공동체적 관점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이는 무관심의 역영에서   있다바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느라고 옆집앞집 챙겨가면서 굳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온생명으로서의 인간이  우주의 작은 단위  안에서 살면서  다른 ‘’ 같은 주체와의 관계가 형성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우주적 관점에서  나아가 천인합일로서 순환의 관계까지 확대해 보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속에는 바로 주체로서의 인간들간의 관계형성을 말하고 있다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우연혹은 필연이라는 관계속에서만 구분되어지며 ‘인연이라는 관계는 매우 오묘한 관계   사람과의 소중한 관계형성이다.


현대사회는 공동체적 삶이 매우 결여된 사회이다소속감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는가 동시에 소속감의 결여로 인해 많은 문제점들을 가져오기도 한다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적 삶을 주장하는 것은 별로 반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있다그러나 과감히 단언하건데 앞으로는 공동체적 삶이 앞으로의 대안적 체제 혹은 사회속성이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서는 바로 ‘’이다. 더욱이 최소한 우리나라는 이웃간의 덕과 정으로 연결된 사

회 였다. 새로 이사오면 옆집에 떡 돌리는 것도 이러한 사회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예를 들어보자. 북한은 남한에 비해 유교적 풍습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사회이다. 가부장적이며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한 마을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은 서로 다 알고 있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개 있는지까지 알 정도로 그렇게 서로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전체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러한 모습은 바로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설에는 떡만들어 옆집에 돌리고 갔다주고 서로 나눠먹기도 하며, 술병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새해인사를 하는 풍습은 여전하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현재 남한에서는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일 것이다. 물론 남한에도 시골지역이나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전통과 삶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물론 북한의 이러한 모습은 다분히 정치체제의 구조적 속성으로 연결되어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북한은 전체주의 사회이며 특히나 공동체주의, 집단주의적 속성이 강한 사회이다. 남녀노소 모든사람이 소속된어진 사람들이다. 어느하나 개인이 속하지 않은 집단 혹은 공동체가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은 초등학교(소학교) 2학년이면 ‘조선소년단’(붉은 넥타이)에 자동적으로 가입된다. 이후 계속 가다가 중학교4학년이면 ‘김일성청년동맹’에 가입된다. 이렇게 북한은 학생때 부터 집단인 공동체적 삶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다분히 정치적인 비판을 할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공동체적, 소속적 삶의 모습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얘기하는 공동체적 삶, 대안적 공동체는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필요하며 대안적이라는 부분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물론 공동체적 삶을 싦어하는 주체적 행위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사회의 폐단이 나타나는 지금 사회에서 역으로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수 혹은 의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물론 대안적 공동체적 삶은 기존의 담론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저자가 얘기하는 대안적 공동체적 삶에서 보듯이 주체적 행위자들간의 화합과 조화로 이뤄진 하나의 이상적인 공동체일 것이다. 공동체적 삶이 한 주체적 생명의 자율성과 자유로움에 제한적이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제 삶에서 한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화합에 조화를 이룰때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서구의 사람들이 한국에(혹은 동양)에 방문했을 때 가장 근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답변한다. 그리고 장점으로서 이것을 꼽는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사회에서 동양의 공동체주의적 모습을 장점으로 꼽는 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부분이다. 왜냐면 그쪽에는 공동체적 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공동체적 삶의 방식에 회의를 품고 배격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분히 우리스스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사상이 심겨져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구적인 것은 다분히 우리가 적용해야만 하는 사고방식이 우리스스로도 모르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삶 그 자체였던 공동체주의적 모습이 서구에서는 대안적 시스템으로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가 배격하는 것에는 다분히 외적인 심겨진  요소가 없는지를 말이다.



(2012. All Right Reserved by Joe Joh)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