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산업혁명(사피엔스)


사피엔스 제4 부 17장

17장. 산업혁명

현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미래를 신뢰하기 때문이며, 자본주의자들이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 할 의사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는 에너지와 원자재가 필요한데 이는 유한하다. 즉 자원은 고갈되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적인 얘기고, 인류 역사 발전과정에서 자원이 고갈될쯤이면 과학의 발전과 투자로 새로운 에너지와 원자재가 만들어졌다.

운송수단 산업을 보면 지난 3백년간 수섭억개의 탈것을 만들어냈다. 마차에서 손수레, 기차, 자동차, 제트기, 우주왕복선까지 말이다.

1700년 과거엔 나무와 철에 의존했지만 오늘날은 플라스틱, 고무, 알루미늄, 티타늄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도요타와 보잉 사에 있는 기계들은 석유 내연기관과 핵발전소로부터 동력을 공급받는다. 이와 비슷한 혁명은 사업의 거의 모든 분야를 휩쓸었는데, 이를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과거 인류는 한 유형의 에너지를 다른 유형으로 바꾸는 방법을 몰랐다. 인간에게 그런 에너지 전환 묘기를 부릴 줄 아는 기계가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몸이다. 인간과 동물의 몸은 대사 과정에서 식품이라는 유기연료를 태워서 거기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근육의 힘으로 전환한다.

인간의 근육은 수레와 집을 만들었고, 황소의 근육은 밭을 갈았으며, 말의 근육은 물건을 운반했다. 이들 근육 기계에 연료를 공급한 에너지원은 단 하나, 바로 식물이었다. 한편 식물은 광합성 과정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포획해서 그것을 유기화합물 속에 저장했다.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행한 거의 모든 일은 근력을 바탕으로 했고, 그 근원은 식물이 포획한 태양에너지였다. 그 결과 인류의 역사는 두 가지 주요 주기의 지배를 받았는데, 식물의 성장 주기와 태양에너지의 변화주기다.

부엌의 비밀

1700년경, 영국의 광산 갱도에서 이상한 소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이것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전 세계를 귀 멀게 할 듯한 소음으로 뒤덮었다. 바로 증기기관 소음이었다.

증기기관의 유형은 여러 가지 였지만 모두가 공통된 원리로 작동했다. 석탄을 비롯한 모종의 연료를 태우고 거기서 나오는 열로 물을 끓여서 증기를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증기가 팽창하면서 피스톤을 밀어내고, 피스톤이 움직이면 거기 연결된 것은 무엇이든 따라 움직인다. 석탄은 처음에 갱도의 물을 뿜어 올리는 펌프를 위해 엄청난 양을 태웠지만 나중엔 천과 실을 짜는 기계에 연결했고 덕분에 섬유 생산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1825년 한 영국인 엔지니어가 석탄이 가득 찬 운반 차량의 행렬에 증기기관을 연결해소, 나중에 1830년 9월 15일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최초의 상업 철도가 영업을 시작했다.

또 다른 중요 발명품은 내연기관이었다. 내연기관은 불과 한 세대 남짓에 인간의 운송 수단에 혁명을 가져왔다. 석유를 액체 정치권력으로 바꿔놓았다. 석유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알려져 있던 물질이었고, 지붕에 방수처리를 하거나 회전축이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는데 쓰였다. 하지만 이후 석유를 위해 피를 흘리며 서로들 싸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에너지의 바다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것이다. 불과 몇십 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산업혁명 이전에 인류의 에너지 시장은 거의 전적으로 식물에 의존했다. 사람은 연간 3천 엑사줄을 저장하는 녹색 에너지 저장소 옆에 살았으며, 여기에서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산업혁명 기간에 우리는 에너지를 품은 거대한 에너지의 바다 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오로지 더 나은 펌프를 발명하는 것뿐이었다.

에너지를 끌어내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던 또 다른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바로 원재자 부족이었다. 과학적 혁신이 일어나, 인류는 플라스탁 같은 완전히 새로운 원자재를 발명하고, 수많은 천연자원도 발견했다. 멀리서 원자재를 실어오는 것도 가능해졌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의 삶

산업혁명은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와 값싸고 풍부한 원자재라는 전대미문의 조합을 내놓았다. 그 결과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성장은 농업에서 가장 먼저 크게 일어났는데, 제2차 농업혁명이었다.

지난 2백 년간 산업적 생산기법이 농업의 주류가 되었다. 트랙터 같은 기계들이 과거 근육의 힘으로 수행되었거나 아예 수행되지 않던 일들을 떠맡기 시작했다. 농경지와 가축의 생산성은 인공비료, 산업적 살충제, 호르몬과 약물이라는 무기고 덕분에 크게 높아졌다. 농산물은 냉장고, 선박, 항공기 덕에 몇 개월씩 저장되었다가 신속하고 값싸게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다. 유럽인들은 신선한 아르헨티나의 쇠고기와 일본 스시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농식물까지 기계화되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 중심 종교에 의해 신성한 지위로 격상될 무렵, 농장 동물들은 더이상 고통과 비참함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로 간주되지 않았고 기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동물은 공장 비슷한 시설에서 대량 생산되며, 몸체의 형태도 산업 수요에 맞게 형성된다. 거대한 생산라인의 톱니로서 전 생애를 보내며, 그 수명과 삶의 질은 해당 기업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결정된다. 산업이 동물들이 제법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도록 신경 쓰는 경우에도, 그들의 사회적, 심리적 욕구에는 본질적 흥미가 없다.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 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달걀과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짬을 내어 자기가 살이나 그 산물을 먹고 있는 닭과 암소, 돼지를 생각하는 일이 드믈다.

진화심리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본 교훈은, 야생에서 형성된 욕구는 설사 더 이상 생존과 번식에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할지라도 계속 주관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산업화된 농업의 비극은 동물의 주관적 욕구는 무시하면서 객관적 욕구만 잘 챙긴다는 점이다.(할로 원숭이)

오늘날 농장에서 기계화된 조립 라인의 일부로 키워지는 가축의 숫자는 모두 수십억 마리에 이르며, 해마다 이 중 약 50억 마리가 도축된다. 이 같은 산업적 사육방법은 농업 생산량과 인류의 식재료 양을 급증시켰다.

기계화된 농작물 재배법과 산업적 가축사육법은 현대의 사회경제 질서의 기반이다. 농업이 산업화되자, 적은 수의 농부로도 많은 사무원과 공장 노동자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농업으로 먹고사는 인구는 2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2퍼센트가 미국 인구 전체를 먹이고 남은 것은 수출할 만큼 생산하고 잇다. 농업의 산업화가 없었더라면 도시의 산업혁명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장과 사무실은 농업에서 풀려난 수십억 명의 손과 두뇌를 흡수해서 전대미문의 생산물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철강과 의류를 만들고 구조물을 세운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무수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전구, 휴대전화, 가메라……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완전해 새로운 종류의 문제가 생겼다. 누가 이 모든 물건을 구매할 것인가?

쇼핑의 시대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위해 끝임없이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 하지만 만드는 것만으론 충분치 못하다. 누군가 제품을 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조업자와 투자자는 곧 파산할 것이다. 이런 파국을 막으면서 업계에서 생산하는 신제품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항상 구매하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종류의 윤리가 등장했는데, 바로 소비지상주의다.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핍 속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검약이 표어였다. 청교도와 스파르타인의 금욕 윤리는 가장 유명한 두 사례였다. 훌륭한 사람은 사치품을 멀리했고, 음식을 버리지 않았으며, 바지가 찢어지면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꿰매 입었다. 오로지 왕과 귀족들만이 그런 가치관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자신들의 부를 눈에 띄게 뽐낼수 있었다.

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로 하여금 제 자신에게 잔치를 베풀어 실컷 먹게 하고,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 스스로 죽이게끔 한다. 검약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시리얼 포장지 위에 쓰여진 “더욱 놀라운 맛을 지닌 진짜 선물’ ‘후회없이 마음껏 드세요’ 이런 글들은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을 유혹하기 보다 배척받기가 더 쉬웠다. 사람들은 여기에 이기적이고, 퇴폐적이고, 도덕적으로 부패했다는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소비지상주의는 대중심리학(Just do it!)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에게 탐닉은 당신에게 좋은 것이며 검약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려 무진장 애썼다.

설득은 먹혔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소비자다. 우리는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무수히 사들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말이다.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수명이 짧은 상품들을 고안하고, 이미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불필요하게 갱신하는 새 모델을 발명한다. 이것은 유행을 따르려면 반드시 사야 하는 물건이다. 쇼핑은 인기있는 소일거리가 되었으며 소비재는 가족, 배우자, 친구 관계의 핵심 매개물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종교 휴일은 쇼핑 축제가 되었다. 블랙프라이데이, 특별세일 하는 날인 것이다.

소비지상주의의 윤리가 꽃피었다는 사실은 식품 시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통 농업사회는 굶주림이라는 무시무시한 그늘 속에서 살았는데, 오늘날의 풍요사회에서 건강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만이다. 그 폐해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입는다. 가난한 자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잔뜩 먹고, 부자들은 유기농 샐러드와 과일 스무디를 잔뜩 먹는다.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소비지상주의 윤리와 사업가의 자본주의 윤리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과거에대 그랬듯이 오늘날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는 노동의 분업이 존재한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값비싼 사치푸에 돈을 흥청망청 썼지만, 농부들은 한 푼 한 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티비를 산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이다.

2016.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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