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쉬르 읽기-소쉬르의 언어의 자의성


소쉬르 읽기-소쉬르의 언어의 자의성





소쉬르 읽기어렵다처음 접하는 언어학이라 그런지 난해한 부분이 많다기호학아나그람랑그 등 생소한 개념들과 그것을 설명하는 풀이조차 어렵다여하튼 중요한건 소쉬르의 언어학에 대한 업적이 언어학의 중요한 맥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언어학의 사전적 정의는 언어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학문이다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체계화된 언어의 형성에 언어학이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관여했다는 것일 테다.

 

아나그람이란 고대 라틴어 시조나 산문 따위에서 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의 심층 내부에서 또 다른 의미체의 텍스트가 구상화되는 데서 나타나는 규칙체계라고 한다여기서 규칙체계기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분명히 이해되지는 않는다다만 이 해석의 한 부분을 보면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또 다른 의미체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부분이다나의 이해가 맞는 것이라면 이 부분은 현재 늘 발생하는 것이다타인의 글말에 대한 의미의 왜곡과 해석을 첨부해 퍼뜨리는 흔한 언어의 왜곡현상인 것이다가령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서 미국 CIA ‘이승만의 퍼스날리티라는 문서 발췌 내용 중에 이승만은 사적인 욕심이 많았다라는 대목을 소개하는데 보수 일각에서 반박영상을 통해 이승만은 사적인 욕심이 많았다라는 부분만 따서 확대해석함으로 백년전쟁을 비판하기도 했다.즉 이러한 언어의 왜곡현상도 또 다른 의미체 부여가 아닐까?

 

소쉬르는 언어는 사전목록이 아니라고 논지를 개시하는데즉 A라는 언어 항목을 B라는 언어 항목으로 11의 대체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해석을 보태자면 아마도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들 수도 있겠다가령 한국어에서 영어(혹은 다른 언어)로의 번역이 소쉬르의 말처럼 11의 항목으로 대체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한국어의 풍부한 단어와 의미를 영어라는 언어로 완벽히 담아내거나 표현할 수 없다는 한계이다이것이 바로 언어학에 대한 소쉬르의 새로운 정의인 것 같다. “언어기호는 하나의 사물과 하나의 이름을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과 하나의 청각영상을 결합한다.”

 

소쉬르나 알튀세르푸코의 고민들은 현재에도 진행되는 고민들이다즉 이 사람들이 과거에 고민했던 부분들그리고 각자 얻었던 해답들이 사실 지금도 누군가들이 동일한 고민들을 하고 있고 또 해답이라고 얻고 있다즉 과거에 누군가 했던 고민들을 지금시대에도 하고 있다는 것인데결국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에 딱 들어맞는 것이다왜 반복될까인간사 그렇다고 넘어가야겠지그런데 문제는 과거에도 했던 동일한 문제의식과 해답을 현재에 와서는 해답을 제외한 채 질문들만 반복하다 나중에야 해답을 찾고 적용하는 것은 인간사의 교만(?)적인 한계들 때문인가물론 과거의 인물들이 던졌던 질문들을 현재의 시점에 적용하기 어려운 조건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꼭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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