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아픔이 상징물이 되어 소비되는 것의 단면

상처와 아픔이 상징물이 되어 소비되는 것의 단면


1. 아래 기사처럼, 이런 상행위는 불편하게 느껴지는것이 사실이다. 노란리본이 세월호 아픔의 상징이 되어 더욱 그렇다. 가급적이면 굳이 저렇게 팔고 그러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2. 노란리본을 가방이나 옷에 달고 다니는 것은 세월호의 아픔에 동참하고 공감한다는 의미다. 광화문 거리에서 하나씩 나눠주는 걸 받아서 달기도 하고 현장에서 모금의 의미로 단돈 천원 정도에 낱개로 파는걸 사서 달고 다니는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3. 그런데 기사에서 처럼 일부 쇼핑몰에서 비싸게도 파는게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다. 조금 더 고급진 리본이나 배찌 형태로도 판매된다. 굳이 저렇게 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상행위로서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게되는 것이다.


4. 그런데 누군가는 저렇게 만들어진 것을 구입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는 법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장례식장 검은 리본이나 무궁화 꽃을 헌화하거나 조문 꽃다발을 사서 보내주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내생각이 틀릴수도 있다.


5. 물론 세월호 노란리본이나 팔찌 등은 '세월호 아픔에 동참하는' 행위로서 그 의미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영생하지 않는한 수시로 언제나 있을 장례식장의 검은 리본이나 헌화 또는 꽃바구니처럼 조문이 있을때 마다 의례적으로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일 없기를 바라지만 세월호 같은 사건이 또 생긴다면 노란리본이 다시 그것을 상징하게 될 수 도 있다.


6. 여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다. 상처와 아픔은 그것을 기리는 필요가 생김으로 인해 상징물을 만들게 되고 그것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게 되며 이것이 상징적 행위로 굳어져 더 나아가 일종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7.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예수의 찔림과 상처, 그리고 죽음을 상징한다. 그렇게 십자가가 '부활'과 더불어 '죄사함과 죽음' 그리고 '상처'등 인류의 상징물로 되었다. 쉽게 말해 상처와 아픔의 상징물이다.


8. 십자가는 지금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예수가 누군지 아는사람이나 모르는 사람들 모두의 액세서리가 되었다. 십자가는 목걸이부터 귀걸이, 반지, 팔찌, 타투, 옷의 프린트 등 수많은 종류의 제품으로 생산되고 판매되어지고 살가죽과 옷들에 새겨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돈으로 교환되고 있다. 심지어 교회들도 안마당에서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9. 그렇게 십자가라는 상징물이 우리 모두에게 소비품이 되었다. 예수의 '찔림과 상처, 그리고 죽음'이 그렇게 소비되었던 것이다. 십자가를 몸 어딘가에 부착하고 다니는 것은 더 이상 아픔과 상처 그리고 죽음을 의미하기 보단 액세서리에 불과해, 그것을 하고다니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더이상 십자가에서 그런 고난에 대한 동참의 마음을 못느낀다. '오 예쁘다, 멋지다' 정도이다.


10. 따라서 쇼핑몰의 세월호 노란 리본도 이런 맥락에서 소비됨으로 인해 아픔과 상처가 그 본연의 의미에서 퇴색될 우려가 있어 상행위자에게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노란리본이 세월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서로 동참하기로 합의했을 뿐이다.


11. 물론 십자가와 달리 노란리본은 아직 패션의 상징으로까지 가지 않았을 뿐이고 거기에 아직은 저항이 있는 것이다.



(기사: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9381.html)

기사명: 세월호 참사 상처까지 이용한 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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