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를 포함한 엄벌론,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하여

토론문 2017.9.30


토론주제: “사형제를 포함한 엄벌론, 표현의 자유 억압” [반대 입장]



1. 죽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엄벌론 반대]


인간의 기본권은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권리다. 여기서 생명권은 가장 중요한 인간의 기본 권리다. 인류역사 이래로 살인과 흉악범죄는 늘 있어왔고 특히 살상은 국가에서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생명을 빼앗는 살상은 주최가 개인이냐 국가냐에 따라 정당성이 부여될 뿐 큰 차이는 없다. 


현재 한국은 사형제도가 존재하지만 사실상 시행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해도 국가는 그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살인자의 경우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나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응당한 처벌(사형)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에서 볼 때 사형은 도덕적 오류를 국가라는 공동체가 지게 된다. 수많은 흉악범죄의 원인들이 있지만 이를 두 가지로 구분하면 사적인 원한에 대한 개인에 대한 범죄와 국가에 대한 저항으로의 범죄가 있다. 이 중 대부분은 개인범죄이다. 범죄 처벌에 대한 역사는 잔혹하고도 다양했다. 강한 엄벌을 통해 범죄를 줄이고자 했던 역사적 노력은 과연 성공을 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면 큰 변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환경, 삶의 형태가 변해왔을 뿐이다. 


동일한 범죄는 인류역사 이래 지금까지 늘 있어왔다. 그러나 범죄에 대한 처벌행태를 대하는 인류의 시선은 보편적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개선되어 왔다. 같은 범죄여도 과거와 달리 휴머니즘적 가치를 적용해왔다.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하지 않다. 누구에게도 죽일 권리는 없다. 한 부모가 잉태한 생명을 사회가 합의하여 죽인다는 것은 그 어떤 대의명분도 정당하지 않다. 사형보다는 낮은 형벌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엄벌의 종류도 다양하여 이 또한 인간 존엄성 차원에서 논할 필요 또한 있다.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엄벌주의도 가능한 줄이고 사회에 동화될 수 있도록 관용의 정신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벌이 두려워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기도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 처할 때엔 받게 될 형벌을 생각하기 보다는 감정이 극에 달한 상황에 처했을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형은 사법적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도 폐지하는 것이 맞다. 물론 처벌을 완전히 약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형벌의 종류를 존엄성을 해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조절할 수 있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간의 존엄을 인위적으로 만든 사회적 제도가 침범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엄벌의 종류도 이러한 부분을 적정하게 규제로서 이용하므로 써 사회에 동화되어야 하는 이유와 가치를 재교육시킬 수도 있다. 교도소의 독방도 이러한 인간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에 형벌로써 존재하며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2. 표현의 자유 억압 반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야 한다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의 존엄성 침해에 대한 저항이고, 다른 하나는 이데올로기 즉 사회통념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볼 수 있다. 최근 우리사회의 문제인 혐오표현에 대한 논쟁은 표현의 자유와는 사실 상관이 없다. 혐오표현은 찬반의 문제가 아닌 인격(인신) 공격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응당한 처벌은 지는 것이 맞다. 일단 이 글에서는 개인의 존엄성 침해에 대한 저항은 다루지 않겠다. 


한국사회의 표현의 자유에서 정치적 논란과 찬반은 이데올로기 즉 사회통념을 저해하는 표현들에 대한 논쟁이 크다. 가령 북한을 찬양한다던지 하는 한국사회의 통념과는 다른 이데올로기나 가치들에 대한 표현이다. 더 나아가 이는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한국사회는 여전히 이 논쟁 갇혀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울 권리다.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정치적 저항이었다. 유신시대, 군부독재 시대에 표현의 자유는 극도로 억압되어 술집에서 친구들과의 대화도 규제하던 시대였다. 한국의 표현의 자유는 저항운동이었다. 민주화 이후 이러한 자유는 대부분 회복되었지만, 이데올로기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억압되고 있으며 우리 모두를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었다. 공산주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여전히 냉전적 이데올로기와 담론이 지배하고 있어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북한이라는 실패한 이데올로기 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에서 승리를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두려움,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한국사회는 여전히 전반적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에서 인간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논쟁보다는 북한이라는 이데올로기 국가에 대한 관점논의로 이동시킨다. “종북 좌파들의 주장이다”라는 매카시즘이 여전히 작동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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