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증언의 신뢰성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탈북자 증언의 신뢰성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 신동혁 씨의 증언들은 국제사회에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체를 알리는 데 어느정도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서전으로도 출간되어 2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인들에공유되었다. 수용소에서 태어난 그가 겪은 수용소 내부의 실상은 매우 처참했다. 여러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가혹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인간의 투지는 매우 강력해서 그곳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의 증언들도 한결같이 가혹한 인권탄압에 대한 실상과 기억들이다. 이는 대부분 사실이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널리 알리며 미국과 유엔 등 여러 나라들을 돌며 인권탄압에 대해 알려왔던 신동혁 씨의 활동은 북한인권운동에 큰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공로로 국제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전 신동혁 씨가 자신의 자서전 내용 중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했다. 당초 자서전에서 밝혔던 13세 때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다시 잡힌 뒤 고문을 당했다고 기술한 내용이 이번에 13세가 아닌 20세 때의 일이었고, 또 어머니와 형의 탈출 시도를 감시자들에게 보고했을 때가 14호 수용소가 아닌 18호 수용소였다고 기존의 증언을 번복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여러 언론에서 기사로 다루면서 어느정도 확대되어 탈북자들의 증언에 대한 ‘신뢰성’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14호 수용소던 18호 수용소던 북한의 실상에 대한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신 씨는 자신의 SNS에 “현 시점에서 나는 정치범수용소를 철폐하고 억압받는 주민들에게 정의를 가져다주기 위한 노력과 사업을 계속할 수도, 계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신동혁 씨가 최근 자신의 자서전 내용 중 일부에서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탈북자들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신동혁 씨 페이스북

그동안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확산되어왔던 북한인권운동과 북한 실상 알리기가 이를 계기로 탈북자들의 증언에 대한 ‘신뢰성’ 을 의심케하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북한의 인권탄압과 가혹한 실상에 대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일로 북한체제의 오점이 가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탈북자들의 증언들에 대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것이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그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통계자료나 경험적 분석자료가 그동안 부재했던 게 사실이다. 문헌적인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북한 사회의 내부 실상에 대한 정보와 평가의 기준은 2000년대 이후로 폭증한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탈북자들의 경험적 증언을 얼마나 신뢰할수 있느냐가 쟁점이었고, 이는 점점 증가되는 탈북자들의 비슷한 경험의 증언들이 신뢰성을 어느 정도 보충해주었다. 즉 탈북자들의 경험과 증언들이 북한사회의 실상과 모순, 그리고 인권탄압을 매우 적나라게 까발리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비판여론과 기존의 북한에 대한 접근법을 부분 수정하게 만들었다.


탈북자들의 증언들로 인해 북한의 퇴폐적이고 반인권적인 면모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이는 북한인권운동을 추동하는 강력한 토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탈북자들의 증언을 과연 믿을 수 있느냐는 신뢰성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북한의 실상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고, 국제사회도 한목소리로 이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이처럼 탈북자들의 증언들은 매우 강력해서 북한인권운동은 대북정책,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보니 탈북자들의 증언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많아졌고 많은 탈북자들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북한을 증언하게 된다. 더 나아가 탈북자들 스스로가 북한인권운동에 앞장서거나 주도적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이는 북한체제의 실패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북한의 인권탄압 실상을 알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서 문제도 발생한다. 탈북자 개개인들이 자신이 겪은 북한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부풀려지거나 과장되는 설명이 추가되기도 한다.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시켜 북한사회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탈북자들을 초청해 북한 내부의 실상과 경험담을 들으려는 꽤많은 수요는 국가기관과 소위 보수적인 단체들이 많았다. 국가기관이라 함은 국정원이나 군부대, 안보기관, 안보 관련 단체 등이다. 물론 이걸 문제삼을 수는 없다. 국가기관은 그렇다쳐도, 탈북자들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실제 이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그나마 캐어(care)해주려는 사람들이 이쪽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라 함은 교회를 포함한 종교단체는 제외하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 종교단체의 캐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구조가 부자연스럽게 정착되면서 탈북자들의 증언을 필요로하는 집단과 탈북자들의 관계가 맞아떨어지게 되고 물론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금전적 관계까지 형성된다. 이게 더 나아가 소위 실제 활동이 없는 탈북자 페이퍼 단체, 일인단체들을 양상해 금전적 보상에 대한 활동까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모든 탈북자들이 과장되게 증언하는 건 아니다.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특성상 탈북자 일부의, 아니 단 한명이라도 이들의 증언은 그대로 일반화되기가 십상이고 실제로 소위 보수•종편 언론들은 이를 부각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를 탈북자들의 잘못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이 겪어왔던 삶들은 실제다. 고통의 경험은 객관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을 접하는 일반인들은 확대해서 그대로 일반화된 사실로 받아들이기 쉽게 된다. 이처럼 생생한 경험을 듣는 건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수요와 공급의 감정적 교감이 일치되어 북한사회를 평가하게 된다. 즉 탈북자 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듣고 북한을 들은 그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 한 사람의 경험은 북한 사회모습 전체, 즉 100개의 퍼즐 조각중 한 조각일 뿐이다.


북한사회와 체제, 비정상이다. 3대세습 독재체제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그러나 그 사회 안에도 활력이 있다. 사람들이 웃고 울며 살아간다. 체제가 비정상이지만 '인민'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이다.


각 개인들이 보고듣고 경험하는 실상은 사람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겪은 북한과 관광객이 겪은 북한은 다를 수밖에 없고 맞짱토론 따위로 진실여부를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남북한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이제 대북정책도 과감해져야 한다. 북한에서 찾아봐야 몇 개뿐 안되는 장점이겠지만 인정해줄 부분은 인정해주고, 또 당연히 그래왔듯이 부정적인 건 꾸준히 지적하고 받아들이면서 신뢰를 쌓아야지 못된 동생 밉다고 가혹한 형 노릇만 하면 남북관계는 결코 회복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번 신동혁 씨 사건으로 대표되는 탈북자들 증언에 대한 신뢰성 문제도 결국 남북관계 회복이 근본적 해결책인 셈이다.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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