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1: 준이 이야기


초상


*이 이야기는 실제인물을 배경으로 하고있으며 전부 실제상황입니다.



# 등장인물: 


1) 11살 준이(가명, 5년 뒤 16살 준이): 경제적 생활고 때문에 학교다닐수 없어서 늘 공부에 대한 욕망과 희망을 꿈꾸고 있음, 북한에 남겨져 있으면서 중국으로 떠난 어머니와 누나를 그리워함


2) 준이의 어머니: 경제적 생활의 어려움으로 중국으로 식량 구하러 떠났다가 오랜 시간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 남겨진 아들을 그리워함, 딸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음


3) 준이의 아버지: 경제적 생활고 때문에 부인을 중국에 식량 구하러 보낼 수밖에 없었음, 본인은 공산당원이고 신념이 투철해서 북한을 떠나지 못하고 있음, 동시에 부인을 떠나보낸 이후 새로운 가정을 꾸려 살게 됨


# 사건장소: 중국국경 근처 마을과 북한


# 스토리 배경의 핵심: 1996~2004 년, 어려운 시기 소위 '고난의 행군' 기간에 북한에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고 탈북자들이 생길 때, 그 중 한 가족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슬픈 이별과 기쁨의 상봉, 그리고 준이의 욕망에 대한 선택으로 또 다른 슬픈 이별이 발생하게 된다. 


# 스토리 발단의 시대적 배경: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망소식이 북한의 모든 TV방송과 라디오를 통해 온 인민들에게 전달된다. 삽시에 북한 땅은 슬픔에 찬 땅이 되어버렸다. 지도자를 잃은 인민들은 남녀노소 불구하고 눈물을 흘렸다. 위대한 수령으로 추앙받던 지도자가 사망하면서 북한 땅은 7월 8일의 비와 같이 희망도 서서히 죽어갔다. 재난은 쌍으로 온다고 가뭄과 홍수도 밀려오면서 그 땅은 서서히 폐허가 되어가고 사회시스템은 기능을 상실하고 배급은 끈기고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온 위기는 식량위기로 300만이 넘게 아사시키는 '고난의 행군'을 만들어냈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배급에만 의존하고 살던 인민들은 배급이 끊기자 스스로 자력갱생의 손으로 식량을 구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어찌할지를....배급에 의존만 하던 그들은 전혀 다른 생활의 방식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혼란과 무질서 안에서 굶주리고 나약해져 하나둘 죽어갔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갈 길을 찾은 그들의 행로는 바로 옆 나라인 중국으로 탈출하는 것 이었다. 앉아서 굶어죽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줄기 가능성 있는 중국 땅을 찾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탈북이 시작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향했다. 두만강은 그들에게 '피눈물의 강'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하는 중국 땅은 결코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 스토리 시작:


1998년 1월 31일.......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어대는 밤, 두만강변의 한 작은 마을의 오래된 연립주택의 허름한 끝집에서 어두운 촛불이 겨우 방구석 한켠을 밝힌다. 

준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밀실회의 하듯이 소곤소곤 촛불 밑에서 배낭을 싸며 약속한다.

'여보, 어쩔 수 없어... 이 길이 마지막 길이야...'

'...그래요 준이아빠, 한 달 동안 어떻게든 식량을 구해서 올 테니 그때까지 준이랑 잘 버텨봐요'


11살의 어린나이 준이는 옆에서 잠결에 스치듯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를 듣는다. 


'준이야...엄마 한 달 어간에 식량 구해올테니까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라'

준이는 눈을 비비며 영문도 모른채 엄마와 누나에게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준이의 어머니와 누나는 생사를 걸고 중국으로 떠났다.


준이는 하루하루 어머니가 배낭 한가득 먹을 것을 가져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다. 해는 뜨고 지기를 수없이 규칙적으로 반복했다. 준이는 언덕너머의 황량한 큰길에 그토록 바라던 그림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지는 노을과 함께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그렇게 한 달이지나 1년이 되고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사이 준이에게는 새엄마가 생기고 두 이붓동생이 생겼다

소학교(초등학교) 2학년까지밖에 다닐 수 없었던 준이는 늘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었고 꿈이었다. 그러나 준이에게 연필과 책가방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고 이룰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6년이라는 세월동안 준이는 매일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며 하루를 보냈다. 


준이의 아버지는 로동당원이었으며 체제에 순응적인 성실한 당원이었다. 부인을 떠나보내고 6년 동안 준이를 돌보느라 온갖 굳은 일을 다해가며 힘들게 살았다.


어떻게든 식량구해서 한달 이내 돌아오겠다고 중국으로 떠난 준이의 어머니는 겨우 중국에 왔으나 중국 또한 그리 안전한 곳이 못되었다. 탈북자라는 신분으로 매일 중국 경찰들의 눈을 피해 다녀야 했고, 시골에 들어가 숨어서 도움으로 농사지으며 살수 밖에 없었다. 먹거리는 풍부한 중국 땅에서 지내는 준이의 엄마 또한 남겨두고 온 아들 준이생각에 밥한 술 제대로 먹지 못하며 만나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행을 택한 준이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생사를 건 탈출을 통해 중국과 베트남과 태국을 거쳐 무사히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 한국에 정착해 드디어 자유를 얻고 좀 더 편한 생활이 주어졌지만 준이의 어머니는 결코 이런 것들을 편히 누릴 수 없었다. 늘 남겨두고 온 아들생각에 하루도 마음 편히 보낼 수가 없었다. 오직 아들 데려오겠다는 생각에 온갖 종류의 일을 다 하며 돈을 모으는 것이 삶의 이유였다. 


준이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산지가 6년이 되었다. 준이는 아버지뿐이었으며, 아버지 또한 의지할 곳이라고는 준이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이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그들은 바로 어머니의 소식을 가져온 것이다. 6년 동안 무소식의 날들을 보내던 준이는 어머니의 소식이라는 그 말 한마디에 벌써 눈물이 핑 돌았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돈을 모아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아들에게 인편의 연락을 보낸 것이다. 그렇게 연락받고 준이와 아버지는 어머니 만나러 두만강을 건너 중국국경근처의 마을 브로커의 집으로 갔다. 준이의 어머니도 아들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준이는 어머니를 만난다는 그 기쁜 설레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안절부절 못하고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성거리다 앉기를 반복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40대 후반의 여성, 바로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서있는 준이를 보자 신발도 채 벗지 못한 채 방안으로 달려 들어와 준이를 끌어안았다. 준이는 자기를 그렇게 끌어안는 어머니를 안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흘린 눈물이 이젠 메말랐는지 눈물을 흘리지도 못하고 가슴이 막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준이의 얼굴을 여기저기 만지며 눈과 표정으로 잘 지냈냐고 할 뿐 이었다. 준이도 그동안 그리워하면서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대한 미움이 엄마를 끌어안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준이는 엄마를 만난 그 기쁨을 눈물을 질끈 흘리며 턱턱 가슴이 막혀 주먹으로 두드리는 엄마에게 왜 이제야 왔냐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렇게 준이와 어머니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기쁨의 감정을 나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나간 세월에 서로 어색했는지 그저 두 손을 서로 잡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로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만난 준이의 가족은 서로 못 다한 얘기를 나누며 어색하지만 행복한 이틀을 보냈다. 그러나 빨리 돌아가야 하는 준이와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맞이하고 있었다. 준이는 어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준이의 어머니는 준이에게 한국에 가서 살자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 가면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공부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준이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준이가 원한 것은 바로 한국에 가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욕망이었고 그에겐 희망이었다. 북한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희망이기 때문이다. 준이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이대로 한국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준이의 아버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북한의 체제에 순응적이고 로동당원이고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북한에 또 새로운 가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준이의 아버지도 준이의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북한에 두고 온 새 가정을 버릴 수는 없었다. 6년이라는 세월동안의 정과 책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아버지에게 의지할 이는 준이는 하나밖에 없었다. 준이의 아버지는 준이가 엄마 따라 한국에 가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준이는 북한 땅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준이는 그토록 바라고 하고 싶던 공부를 한국에 가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준이의 마음에는 온통 갈등으로 가득 찼다. 왜냐면 아버지를 버리고 떠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아버지를 떠나 한국으로 가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더 큰 희망이었고 그토록 꿈꾸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북한을 떠날 수 없는 아버지를 떠나야만 실현할 수 있는 꿈은 그의 내면에서 갈등으로 서로 부딪혔다. 준이는 자신의 꿈을 위해 아버지와의 생이별을 다시 겪어야만 했다. 


이미 어머니와 이별했던 준이에게 있어서 아버지와의 이별은 피눈물 나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준이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한국에 가서 공부해서 꼭 이루려던 꿈을 이루고 아버지를 찾는 것이 그에게 최선의 결정이었다. 준이의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준이도 아버지에게 떠나겠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내면에 갈등으로 부딪혔다. 


북한을 떠날 수 없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아버지와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이별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차라리 엄마의 소식이 없었고 그냥 북한에서 그렇게 살던 대로 살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배신할 수 없는 준이는 결국 아버지에게 떠나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보다도 한국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는 기회를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준이는 아버지가 잠들었을 때 편지 한 장 남기고 가슴이 찢겨지는 아픔을 삼키며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떠나가며 잠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준이는 아버지께 맹세했다. 꼭 다시 찾을 거라고...그때 까지 살아만 있어 달라고.....


기쁨의 만남도 잠시 이별은 그들을 그렇게 갈라놓았다. 6년만의 어머니와의 만남은 아버지와의 이별이 되었고 찢기는 이별의 아픔의 대가는 준이의 꿈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늦었지만 회복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 (스토리 끝)







** 위 스토리는 실제인물의 이야기이며, 현재 한국에 정착한 3만 여명이 넘는 탈북자들과 아직 제3국을 떠도는 수많은 탈북자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아픈 상처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힘드나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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